1.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천만 관객 영화
영화 '암살'은 2015년 7월에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국내 상영 영화 중 역대 12위의 관객 수를 기록하였고, 총 관객 수는 약 1,270만 명 정도입니다. 한국의 유명 배우인 이정재, 전지현, 조진웅, 하정우 등이 출연하였습니다.
한일 병합이 이루어진 1911년, 독립운동가 염석진(이정재)이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는 작전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하지만 작전에 실패하고 종로 경찰서에 투옥된 염석진은 일본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오히려 스파이가 되어 빠져나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33년, 염석진은 독립군을 돕는 척 하면서 계속해서 스파이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이 염석진과 협력하여 독립군 정예 인력을 모아 친일파 강인국과 일본군 장교 카와구치 소장을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에 안옥윤(전지현)과 추상옥(조진웅), 그리고 황덕삼(최덕문)으로 구성된 암살단이 꾸려지고, 일본 경찰은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작전을 수행하던 중 안옥윤은 친일파 강인국의 외동딸인 미츠코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츠코는 자신과 생김새가 똑같았고, 자신이 강인국의 쌍둥이 딸임을 알게되며 안옥윤은 혼란에 빠집니다. 미츠코의 결혼식에 대신 참석한 안옥윤은 그 자리에서 암살 작전을 수행하지만 수많은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광복이 도래하고 스파이 염석진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지만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2. 남자현, 대한민국의 첫 여성 무장 독립운동가
남자현은 1872년 12월 7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891년 무렵, 남자현은 19세의 나이로 김영주와 혼인하였으며, 결혼한 지 6년 후 남편 김영주가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군과 전투 중에 전사하였습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남자현은 김동삼의 서로군정서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세력의 지원 업무를 담당하였고,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1933년 주만일본대사의 암살 계획에 참여하였다가 스파이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당시 60세가 넘은 나이로 일본 경찰로부터 온갖 고문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5일 만에 사망하였습니다.
남자현의 사망 후,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 무장 독립운동가이며, '여자 안중근'이라고도 불리는 남자현은 다른 독립 운동가들에 비해 대중의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의 주인공인 안옥윤의 실제 인물로 널리 알려지며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이후 생가가 조성되고 남자현 의사 기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3.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희생을 상기 시키다.
영화 '암살'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유명한 영화이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어 국경일마다 TV에서 자주 방영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힘겨웠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누군가는 나라를 버리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움을 이어갑니다. 또한, 이 둘은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며 살아갑니다. 한 나라, 한 민족이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가 책으로만 배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투쟁의 모습들이 영화로 재현 되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았는지, 수많은 위험과 장애물을 극복하며 얼마나 희생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 '암살'은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지 말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